제 27차 달빛기행 - 인천가족공원 순환산책로 -


하지가 지난지 며칠이 되지 않아 낮이 너무 길다. 산책로에 있는 정자에 올랐는데 이제 막 해가 진다. 황홀경은 아니지만 원없이 낙조를 즐겼다.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데 그럴 기미가 없어 산책로 정상으로 그냥 올랐다.


정상에서 막걸리를 한잔하고 간식을 먹으며 끼리끼리 모여 정담을 나눈다.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 한가로움이 주는 여유인 것 같다. 산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다시 출발할 때쯤 어둠이 깔린다. 


산책로는 예전 그대로 콘크리트 차도였기에 달빛 하나 없지만 손전등을 꺼도 길은 훤하게 앞에 깔린다. 난 산의 이 어둠이 좋다. 능선 너머로 도시의 불야성이 하늘을 밝히지만 그럴수록 산은 먹빛이 짙어진다. 마치 먹빛 장삼을 두른 노승이 묵언수행을 하는 모습 같다.


산책로를 내려와 새로 조성된 외인묘지를 하나하나 훑어본다. 대부분 세관에 근무하거나 해군 또는 무역상인데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들이 많다. 풍토병이 있었나? 어쩌면 개항기에는 의료시설이나 보건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까닭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대면, 이곳을 걸으면 매번 묘한 떨림이 온다. 두려움은 아니다.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아왔기에 죽음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뭔가 실체가 잡히지 않는 이 느낌, 뭐라고 해야 하나? 더 기다리면 알 수 있을까?


모두 19명이 참가했다. 하얗게 눈이 내린 밤에 다시 와보자고 약속을 했다. 도금봉 주연의 '월하의 공동묘지'가 아닌 '설하의 공동묘지'가 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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